[현타일보 20220410] 삼성의 위기로 촉발된 보이지 않는 안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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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0
삼성전자의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 치고 있다. 4월8일 마감기준으로 67,800원. 전 고점인 96,800 대비 30%나 하락한 모습니다. 속칭 '7만전자'라고 불리면서 7만원 대에서 등락하던 주가가 한 번 6만원대로 내려가는가 했더니 6만원대에서 자리잡는 모양새이다.
2022년 1분기 삼성전자의 매출은 77조, 영업이익은 14조 1천억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실적 대비 이해할 수 없는 주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3월 16일 삼성주주총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이슈는 GOS 였다. Game Optimizing Service 의 약자인 GOS 혹은 '고스'라고 불리는 이 서비스는 말과 다르게 게임을 최적화시키는 게 아니고 게임 실행시 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려버리는 서비스(?)이다. 그냥 조금 떨어뜨리는 정도가 아니다. 기종에 따라서는 폰이 낼 수 있는 최대 성능의 절반 가까이 성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 결과 최신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성능이 몇 년 전에 출시한 삼성 자사의 스마트폰보다 더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수많은 유저들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사용자들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새로 산 삼성 스마트폰이 구형 삼성 스마트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성능 하락이 수치로 드러나지 않도록 벤치마크 앱(스마트폰의 성능을 측정하는 앱)이 가동될 때는 '고스'를 중지시켜서 성능이 뛰어난 것 처럼 보이게 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게 된 사용자들은 삼성전자에 항의서한을 보냈지만 고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원은 '이것은 삼성의 정책이며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답변을 보내왔다. 이는 사용자들을 더욱 화가 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족쇄는 사용자가 끌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 GOS 가 게임 등에 진입할 때 스마트폰의 성능을 떨어뜨림
○ 스마트폰의 성능을 심할 땐 절반 가까이 저하시킴
○ 성능 측정 앱이 작동하면 GOS 기능을 꺼서 성능이 좋은 것 처럼 사용자를 기만
○ 게임이 아닌 일반 앱 사용시도 GOS 작동, 성능저하(인스타그램 등)
○ 사용자는 이런 기능을 끌 수 없음
○ 삼성전자는 이런 정책을 변경할 마음이 없음
정리하자면 이런 식으로 문제가 밝혀지면서 그 심각성이 점점 커져 간 사항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 제품의 사용자이면서 동시 주주인 젊은 주주들 중심으로 주주총회장에서 항의가 있었고 한종희 부문장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결국 사용자가 GOS 를 끌 수 있도록 삼성전자가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지만,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GOS 를 유지하려고 했을까?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삼성의 정책은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 가능할 것 같다. 바로 '발열'을 잡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2016년 일어난 갤럭시 노트 7의 화재 사건 때문에 해당 스마트폰을 전량 수거한 후 배터리 성능을 줄인 갤럭시 노트 팬 에디션으로 저가 재출시한 아픈 경험이 있다. 배터리 용량을 넉넉하게 잡으려고 설계한 것인데 이게 화가 되었다. 부피는 작고 고용량의 에너지는 충전시켜야겠고 하다 보니 안전 문제에 결함이 생겼을텐데 이를 충분히 테스트하지 않은 채 출시했다가 사용자도 삼성전자도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열과 관련된 문제에는 삼성이 유독 심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반도체에서 열은 반드시 발생한다. 아주 저항이 낮은 도체에서도 전류가 흐르면 열이 발생하는데 반도체는 도체보다 저항이 높다. 저항이 높은데 많은 전류가 지나가면 반드시 열이 발생한다. 가정에서 쓰는 커피포트가 그런 원리다. 이 열 문제를 잡기 위해 수많은 회사들이 노력했고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해나갔다.
혹은 열문제 때문에 회사가 침체를 겪기도 했다. 인텔이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 성장세가 꺾인 것도 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컴퓨터에 사용되는 메인 반도체인 CPU(스마트폰에서는 AP라고 한다)는 클럭 단위로 연산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초창기 CPU는 클럭을 빠르게 주입하여 연산속도를 늘리는 것이 기술력이었다. 초창기 1MHz 에도 못 미쳤던 8086 계열의 IBM 컴퓨터 CPU 대비 지금은 이것의 수천배 속도의 클럭인 수 기가 Hz 단위의 클럭을 사용한다. 문제는 열이다. 클럭을 증가시킬 수록 열은 더 많이 발생한다. 고사양의 PC로 갈 수록 컴퓨터에 내장된 팬이 많아지고 고성능 팬이 채택되어 본체 내의 열기를 빼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냉각 시스템은 열을 빼기 위해 소음을 발생시키면서 컴퓨터의 열과 소음이 점점 이슈가 되어갔다.
열은 다른 말로 풀이하면 낭비되는 전력이기도 하다. 고사양 컴퓨터로 갈 수록 열과 소음이 심해지고 그만큼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게임 좋아하는 자녀를 둔 집에서는 새 컴퓨터 구입 후 갑자기 늘어난 전기요금으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비트코인 채굴과 같은 더욱 극단적인 컴퓨팅 환경에서는 전기요금이 몇 십만원 수준이 아니고 수천만원 단위로 발생한다. 이 큰 비용의 대부분이 열로 소모되어 없어지는 것이다(이러한 낭비열은 탄소 이슈를 낳으면서 환경 문제로 이어졌다).
이러한 열을 잡기 위한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형화이다. 소형화된 회로는 적은 전류로 구동된다. 전류가 적으니 열도 적게 발생한다. 열이 적으니 클럭을 올릴 수 있고 이는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반도체 업체들은 소형화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였다. 이러한 소형화의 기준은 나노(Nano : 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공정 세밀도이다. 2000년도에 100나노 공정이었던 반도체는 지금 4나노 시대를 열었다. 원자 하나의 지름이 0.1 나노미터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초 세밀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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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분기 파운드리시장 매출 순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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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서 발표한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표
빨간 색이 TSMC 그 아래 파란 색이 삼성전자의 점유율이다. 반도체 중 메모리 분야만 보면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 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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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스마트폰 CPU)의 전력과 성능 비교표. 오른쪽으로 갈 수록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위로 갈 수록 성능이 좋다. 회색으로 표시된 애플의 A15 모바일 AP의 경우 저전력 제품군인 A15E 가 비슷한 성능 대비 전력을 매우 적게 소모하고 고성능 제품군인 A15P의 경우 동급 전력 대비 높은 성능을 자랑한다. 이러한 강점으로 애플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을 점점 높이고 있다.
TSMC와 애플에 밀리고 있는 삼성전자
이러한 반도체 소형화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일본 미국 등의 선발 주자들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고 대만 한국 등이 미세화 공정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은 2030년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겨야 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대만의 TSMC 이다. 반도체를 직접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을 파운드리라고 한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마켓의 최강자이지만 비메모리/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삼성은 TSMC를 이기기 위해 투자를 계속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TSMC 가 시장의 최강자이다.
게다가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A15, M1 등의 혁신적인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저발열 저전력 고성능의 AP를 자사 제품에 탑재하고 있다. 현재 애플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고급(400달러 이상) 기종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6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바꾸어 말하면 삼성은 중저가형 시장에서, 애플은 고급형 시장에서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가별 스마트폰 점유율을 봐도 애플이 대부분 1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의 경우 순위권 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있더라도 S 씨리즈 같은 고급형 스마트폰이 아닌 보급형인 A 씨리즈가 눈에 보인다.
다시 반도체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세공정화는 발열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미세공정화가 이루어졌다고 반드시 발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은 아니다. 칩의 설계부터 생산 공정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된 파이프라인이 가동되어야만 그 목적이 달성된다.
신흥 업체의 부상. 삼성전자와 결별하는 퀄컴
이러한 시장 상황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저가형 칩을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진 대만 미디어텍에서 새로운 AP 제품인 디멘시티 시리즈를 내놓았다. 미디어텍은 대만 반도체 2위 업체이며 직접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펩리스업체이다. 생산은 TSMC 4나노 공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AP가 갤럭시 씨리즈에 탑재되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이나 삼성의 엑시노스칩을 능가하는 성능이며 애플의 A15과 맞먹는 성능이라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반도체 시장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냅드래곤이나 엑시노스가 디멘시티보다 취약한 부분이 발열 문제로 꼽힌다. 갤럭시 S21에 들어가는 스냅드래곤 888 이나 엑시노스 2100 같은 최상위 AP들은 삼성의 파운드리에서 생산된다. 공교롭게 둘다 발열 이슈가 생겼다. 앞서 언급했지만 발열문제 극복은 설계부터 생산공정에까지 모든 라인이 최적화되어있어야 한다. 발열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설계 혹은 생산공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으로 다급해진 퀄컴은 차세대 AP 생산을 TSMC 에 위탁한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3나노 공정은 전량 TSMC에, 4나노 공정 일부도 TSMC에 맡긴다는 것이다.
삼성의 고민과 약점
퀄컴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을 취한 것일 수 있지만 이러한 결정은 삼성전자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역대급 매출과 영업이익을 남겼음에도 주가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은 이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퀄컴은 삼성 입장에서 큰 고객이자 큰 공급업체이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삼성이 고객이지만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는 퀄컴이 고객인 관계다. 이렇게 긴밀하게 협력하던 업체가 물량을 경쟁업체에게 넘긴다는 것이 큰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삼성의 기술력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퀄컴과 삼성의 칩 모두가 발열 이슈가 생겼으므로 퀄컴으로서는 삼성의 생산공정을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물량을 TSMC로 돌리겠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만약 TSMC에게 납품된 칩에서 여전히 발열 이슈가 있다면 이것은 칩을 설계한 퀄컴의 기술력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TSMC에서 납품된 스냅드래곤에서 발열 문제가 줄었거나 발생하지 않는다면? 삼성으로서는 치명적인 결과가 된다. 공정만 4나노이지 TSMC의 기술력에 한참 못 따라간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4나노 공정에서의 수율 면에서 삼성전자는 TSMC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수율은 불량율의 반대말이다. 수율이 높다는 것은 제품 불량율이 낮다는 것이다. 4나노 공정에서 삼성전자의 수율은 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10개를 만들면 7개는 버린다는 뜻이다. 반면 TSMC의 수율은 70% 정도로 알려져있다. 낮은 수율은 원가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제품을 만들면서 원가가 더 들어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낮은 수율은 제품의 안정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합격된 제품의 성능도 합격 지표에만 도달했지 다른 잠재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제품 합격 기준에서 발열이 차지하고 있는 상세한 점수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양산품에서 발열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발열 관련 기준이 다소 엄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율 이슈도 퀄컴이 파트너를 교체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던 중요한 것은 동일한 설계로 삼성전자와 TSMC에서 생산한 제품이 발열 문제에서 얼마나 차이가 얼마나 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의 결론에 따라 다른 펩리스 업체들도 줄줄이 TSMC로 이동하게 되면 삼성으로서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될 지도 모른다.
반도체 대란과 국가의 개입
일시적인 문제로 보였던 반도체 수급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다. 공장 화재 등 몇 개의 우연적인 사건으로 촉발되었던 차량용 반도체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생산 물류의 차질로 인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차를 계약한 사람들은 빨라도 6개월 늦으면 1년 이상 기다려야 원하는 차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차량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대형 자동차 회사의 협력 업체들도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차가 안 만들어지니 부품을 납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벌써 1차벤더 2차벤더의 부도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루프렉 제조업체인 진원은 1차벤더이지만 납품이 힘들어져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 업체에 납품하던 2차 벤더들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것은 미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해 2월에 공급망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America's Supply Chain) 을 발표했다. 국제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응하고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내 생산의 기초를 확장하겠다는 의지다. 이어서 4월에는 반도체 자체 공급망 구축을 선언했으며 후속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게 공급망 관련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11월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도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산업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국가개입은 코로나로 인한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공장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반도체는 단순한 정보처리기기가 아니고 전략물자기 때문이다. 음식 백신 등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확보해두지 않으면 국가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될 산업 영역이란 의미다. 미국 유럽 등은 마스크 백신 등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가 생산을 가속화하도록 지원하거나 물량을 맞추기 위해 강제생산을 지시한 바 있다. 이러한 공공재의 국가 주도 생산 즉 공산(共産) 개념은 기존 자본주의 이념과는 반대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를 거치면서 발언권이 쪼그라든 신자유주의는 이제 펜데믹 상황에서 발언권이 없어졌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물자는 국가가 챙기겠다는 것이 지금 세계 국가들의 기조로 정착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상황도 이러한 기조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에서 반도체가 없어서 탱크 등의 무기를 못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방법은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원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다. 첨단의 무기체계를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반도체 기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술은 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수십 나노 공정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왔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 제재 중 반도체 금수는 필수다. 공장이 멈추었는지는 모르지만 첨단 반도체 수급은 매우 어려워졌을 것이다. 중국이 협력할 가능성은 있다. 중국 역시 반도체 제재로 수출 길이 막혀버렸지만 아직은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화웨이 등의 첨단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의 설계기술과 한국 대만의 생산기술이 가지고 있는 기술격차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국가 안보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반도체라는 전략물자를 다른 국가의 처분에 맡기는 것의 위험성이 점점 증대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봤을 때 삼성과 TSMC의 경쟁은 단지 사기업의 경쟁 문제로, 혹은 일거리 먹거리 문제로 단순화할 사안이 아니다. 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단지 기업의 성장 문제가 아니라 이제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현행 점유율에 그치거나 점점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세계의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해는 공장이 있는 국가의 전략적 중요성은 어떻게 평가될까? 공교롭게도 한국 대만 모두 명백한 위협과 직면해 있다.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산권 국가와 대립하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끊임 없이 중국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대만이 보유한 반도체 기술은 어떻게 될까? 미국은 한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꼭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곳을 지키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게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입장에서는 단지 먹고 사는 '큰 산업'의 의미 이상의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 상실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상실 및 안보 위험과 연결되어있다. TSMC의 빠른 기술 성장, 미디어텍의 부상, 퀄컴의 노선변화로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은 증폭되었다. 단지 삼성이 잘 알아서 할 문제로 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중요하다. 삼성은 미국에 파운드리 설립을 하려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한국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고 국내 반도체 산업이 그 전략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활을 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 치고 있다. 4월8일 마감기준으로 67,800원. 전 고점인 96,800 대비 30%나 하락한 모습니다. 속칭 '7만전자'라고 불리면서 7만원 대에서 등락하던 주가가 한 번 6만원대로 내려가는가 했더니 6만원대에서 자리잡는 모양새이다.
2022년 1분기 삼성전자의 매출은 77조, 영업이익은 14조 1천억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실적 대비 이해할 수 없는 주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3월 16일 삼성주주총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이슈는 GOS 였다. Game Optimizing Service 의 약자인 GOS 혹은 '고스'라고 불리는 이 서비스는 말과 다르게 게임을 최적화시키는 게 아니고 게임 실행시 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려버리는 서비스(?)이다. 그냥 조금 떨어뜨리는 정도가 아니다. 기종에 따라서는 폰이 낼 수 있는 최대 성능의 절반 가까이 성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 결과 최신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성능이 몇 년 전에 출시한 삼성 자사의 스마트폰보다 더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수많은 유저들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사용자들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새로 산 삼성 스마트폰이 구형 삼성 스마트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성능 하락이 수치로 드러나지 않도록 벤치마크 앱(스마트폰의 성능을 측정하는 앱)이 가동될 때는 '고스'를 중지시켜서 성능이 뛰어난 것 처럼 보이게 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게 된 사용자들은 삼성전자에 항의서한을 보냈지만 고스를 담당하고 있는 사원은 '이것은 삼성의 정책이며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답변을 보내왔다. 이는 사용자들을 더욱 화가 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족쇄는 사용자가 끌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 GOS 가 게임 등에 진입할 때 스마트폰의 성능을 떨어뜨림
○ 스마트폰의 성능을 심할 땐 절반 가까이 저하시킴
○ 성능 측정 앱이 작동하면 GOS 기능을 꺼서 성능이 좋은 것 처럼 사용자를 기만
○ 게임이 아닌 일반 앱 사용시도 GOS 작동, 성능저하(인스타그램 등)
○ 사용자는 이런 기능을 끌 수 없음
○ 삼성전자는 이런 정책을 변경할 마음이 없음
정리하자면 이런 식으로 문제가 밝혀지면서 그 심각성이 점점 커져 간 사항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 제품의 사용자이면서 동시 주주인 젊은 주주들 중심으로 주주총회장에서 항의가 있었고 한종희 부문장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결국 사용자가 GOS 를 끌 수 있도록 삼성전자가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지만,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GOS 를 유지하려고 했을까?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삼성의 정책은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 가능할 것 같다. 바로 '발열'을 잡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2016년 일어난 갤럭시 노트 7의 화재 사건 때문에 해당 스마트폰을 전량 수거한 후 배터리 성능을 줄인 갤럭시 노트 팬 에디션으로 저가 재출시한 아픈 경험이 있다. 배터리 용량을 넉넉하게 잡으려고 설계한 것인데 이게 화가 되었다. 부피는 작고 고용량의 에너지는 충전시켜야겠고 하다 보니 안전 문제에 결함이 생겼을텐데 이를 충분히 테스트하지 않은 채 출시했다가 사용자도 삼성전자도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열과 관련된 문제에는 삼성이 유독 심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반도체에서 열은 반드시 발생한다. 아주 저항이 낮은 도체에서도 전류가 흐르면 열이 발생하는데 반도체는 도체보다 저항이 높다. 저항이 높은데 많은 전류가 지나가면 반드시 열이 발생한다. 가정에서 쓰는 커피포트가 그런 원리다. 이 열 문제를 잡기 위해 수많은 회사들이 노력했고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해나갔다.
혹은 열문제 때문에 회사가 침체를 겪기도 했다. 인텔이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 성장세가 꺾인 것도 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컴퓨터에 사용되는 메인 반도체인 CPU(스마트폰에서는 AP라고 한다)는 클럭 단위로 연산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초창기 CPU는 클럭을 빠르게 주입하여 연산속도를 늘리는 것이 기술력이었다. 초창기 1MHz 에도 못 미쳤던 8086 계열의 IBM 컴퓨터 CPU 대비 지금은 이것의 수천배 속도의 클럭인 수 기가 Hz 단위의 클럭을 사용한다. 문제는 열이다. 클럭을 증가시킬 수록 열은 더 많이 발생한다. 고사양의 PC로 갈 수록 컴퓨터에 내장된 팬이 많아지고 고성능 팬이 채택되어 본체 내의 열기를 빼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냉각 시스템은 열을 빼기 위해 소음을 발생시키면서 컴퓨터의 열과 소음이 점점 이슈가 되어갔다.
열은 다른 말로 풀이하면 낭비되는 전력이기도 하다. 고사양 컴퓨터로 갈 수록 열과 소음이 심해지고 그만큼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게임 좋아하는 자녀를 둔 집에서는 새 컴퓨터 구입 후 갑자기 늘어난 전기요금으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비트코인 채굴과 같은 더욱 극단적인 컴퓨팅 환경에서는 전기요금이 몇 십만원 수준이 아니고 수천만원 단위로 발생한다. 이 큰 비용의 대부분이 열로 소모되어 없어지는 것이다(이러한 낭비열은 탄소 이슈를 낳으면서 환경 문제로 이어졌다).
이러한 열을 잡기 위한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형화이다. 소형화된 회로는 적은 전류로 구동된다. 전류가 적으니 열도 적게 발생한다. 열이 적으니 클럭을 올릴 수 있고 이는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반도체 업체들은 소형화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였다. 이러한 소형화의 기준은 나노(Nano : 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공정 세밀도이다. 2000년도에 100나노 공정이었던 반도체는 지금 4나노 시대를 열었다. 원자 하나의 지름이 0.1 나노미터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초 세밀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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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분기 파운드리시장 매출 순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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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서 발표한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표
빨간 색이 TSMC 그 아래 파란 색이 삼성전자의 점유율이다. 반도체 중 메모리 분야만 보면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 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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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스마트폰 CPU)의 전력과 성능 비교표. 오른쪽으로 갈 수록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위로 갈 수록 성능이 좋다. 회색으로 표시된 애플의 A15 모바일 AP의 경우 저전력 제품군인 A15E 가 비슷한 성능 대비 전력을 매우 적게 소모하고 고성능 제품군인 A15P의 경우 동급 전력 대비 높은 성능을 자랑한다. 이러한 강점으로 애플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을 점점 높이고 있다.
TSMC와 애플에 밀리고 있는 삼성전자
이러한 반도체 소형화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일본 미국 등의 선발 주자들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고 대만 한국 등이 미세화 공정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은 2030년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겨야 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대만의 TSMC 이다. 반도체를 직접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을 파운드리라고 한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마켓의 최강자이지만 비메모리/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삼성은 TSMC를 이기기 위해 투자를 계속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TSMC 가 시장의 최강자이다.
게다가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A15, M1 등의 혁신적인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저발열 저전력 고성능의 AP를 자사 제품에 탑재하고 있다. 현재 애플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고급(400달러 이상) 기종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6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바꾸어 말하면 삼성은 중저가형 시장에서, 애플은 고급형 시장에서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가별 스마트폰 점유율을 봐도 애플이 대부분 1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의 경우 순위권 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있더라도 S 씨리즈 같은 고급형 스마트폰이 아닌 보급형인 A 씨리즈가 눈에 보인다.
다시 반도체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세공정화는 발열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미세공정화가 이루어졌다고 반드시 발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은 아니다. 칩의 설계부터 생산 공정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된 파이프라인이 가동되어야만 그 목적이 달성된다.
신흥 업체의 부상. 삼성전자와 결별하는 퀄컴
이러한 시장 상황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저가형 칩을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진 대만 미디어텍에서 새로운 AP 제품인 디멘시티 시리즈를 내놓았다. 미디어텍은 대만 반도체 2위 업체이며 직접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펩리스업체이다. 생산은 TSMC 4나노 공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AP가 갤럭시 씨리즈에 탑재되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이나 삼성의 엑시노스칩을 능가하는 성능이며 애플의 A15과 맞먹는 성능이라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반도체 시장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냅드래곤이나 엑시노스가 디멘시티보다 취약한 부분이 발열 문제로 꼽힌다. 갤럭시 S21에 들어가는 스냅드래곤 888 이나 엑시노스 2100 같은 최상위 AP들은 삼성의 파운드리에서 생산된다. 공교롭게 둘다 발열 이슈가 생겼다. 앞서 언급했지만 발열문제 극복은 설계부터 생산공정에까지 모든 라인이 최적화되어있어야 한다. 발열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설계 혹은 생산공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으로 다급해진 퀄컴은 차세대 AP 생산을 TSMC 에 위탁한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3나노 공정은 전량 TSMC에, 4나노 공정 일부도 TSMC에 맡긴다는 것이다.
삼성의 고민과 약점
퀄컴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을 취한 것일 수 있지만 이러한 결정은 삼성전자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역대급 매출과 영업이익을 남겼음에도 주가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은 이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퀄컴은 삼성 입장에서 큰 고객이자 큰 공급업체이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삼성이 고객이지만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는 퀄컴이 고객인 관계다. 이렇게 긴밀하게 협력하던 업체가 물량을 경쟁업체에게 넘긴다는 것이 큰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삼성의 기술력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퀄컴과 삼성의 칩 모두가 발열 이슈가 생겼으므로 퀄컴으로서는 삼성의 생산공정을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물량을 TSMC로 돌리겠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만약 TSMC에게 납품된 칩에서 여전히 발열 이슈가 있다면 이것은 칩을 설계한 퀄컴의 기술력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TSMC에서 납품된 스냅드래곤에서 발열 문제가 줄었거나 발생하지 않는다면? 삼성으로서는 치명적인 결과가 된다. 공정만 4나노이지 TSMC의 기술력에 한참 못 따라간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4나노 공정에서의 수율 면에서 삼성전자는 TSMC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수율은 불량율의 반대말이다. 수율이 높다는 것은 제품 불량율이 낮다는 것이다. 4나노 공정에서 삼성전자의 수율은 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10개를 만들면 7개는 버린다는 뜻이다. 반면 TSMC의 수율은 70% 정도로 알려져있다. 낮은 수율은 원가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제품을 만들면서 원가가 더 들어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낮은 수율은 제품의 안정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합격된 제품의 성능도 합격 지표에만 도달했지 다른 잠재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제품 합격 기준에서 발열이 차지하고 있는 상세한 점수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양산품에서 발열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발열 관련 기준이 다소 엄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율 이슈도 퀄컴이 파트너를 교체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던 중요한 것은 동일한 설계로 삼성전자와 TSMC에서 생산한 제품이 발열 문제에서 얼마나 차이가 얼마나 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의 결론에 따라 다른 펩리스 업체들도 줄줄이 TSMC로 이동하게 되면 삼성으로서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될 지도 모른다.
반도체 대란과 국가의 개입
일시적인 문제로 보였던 반도체 수급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다. 공장 화재 등 몇 개의 우연적인 사건으로 촉발되었던 차량용 반도체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생산 물류의 차질로 인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차를 계약한 사람들은 빨라도 6개월 늦으면 1년 이상 기다려야 원하는 차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차량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대형 자동차 회사의 협력 업체들도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차가 안 만들어지니 부품을 납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벌써 1차벤더 2차벤더의 부도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루프렉 제조업체인 진원은 1차벤더이지만 납품이 힘들어져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 업체에 납품하던 2차 벤더들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것은 미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해 2월에 공급망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America's Supply Chain) 을 발표했다. 국제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응하고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내 생산의 기초를 확장하겠다는 의지다. 이어서 4월에는 반도체 자체 공급망 구축을 선언했으며 후속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게 공급망 관련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11월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도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산업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국가개입은 코로나로 인한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공장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반도체는 단순한 정보처리기기가 아니고 전략물자기 때문이다. 음식 백신 등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확보해두지 않으면 국가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될 산업 영역이란 의미다. 미국 유럽 등은 마스크 백신 등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가 생산을 가속화하도록 지원하거나 물량을 맞추기 위해 강제생산을 지시한 바 있다. 이러한 공공재의 국가 주도 생산 즉 공산(共産) 개념은 기존 자본주의 이념과는 반대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를 거치면서 발언권이 쪼그라든 신자유주의는 이제 펜데믹 상황에서 발언권이 없어졌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물자는 국가가 챙기겠다는 것이 지금 세계 국가들의 기조로 정착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상황도 이러한 기조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에서 반도체가 없어서 탱크 등의 무기를 못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방법은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원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다. 첨단의 무기체계를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반도체 기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술은 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수십 나노 공정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왔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 제재 중 반도체 금수는 필수다. 공장이 멈추었는지는 모르지만 첨단 반도체 수급은 매우 어려워졌을 것이다. 중국이 협력할 가능성은 있다. 중국 역시 반도체 제재로 수출 길이 막혀버렸지만 아직은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화웨이 등의 첨단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의 설계기술과 한국 대만의 생산기술이 가지고 있는 기술격차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국가 안보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반도체라는 전략물자를 다른 국가의 처분에 맡기는 것의 위험성이 점점 증대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봤을 때 삼성과 TSMC의 경쟁은 단지 사기업의 경쟁 문제로, 혹은 일거리 먹거리 문제로 단순화할 사안이 아니다. 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단지 기업의 성장 문제가 아니라 이제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현행 점유율에 그치거나 점점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세계의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해는 공장이 있는 국가의 전략적 중요성은 어떻게 평가될까? 공교롭게도 한국 대만 모두 명백한 위협과 직면해 있다.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산권 국가와 대립하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끊임 없이 중국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대만이 보유한 반도체 기술은 어떻게 될까? 미국은 한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꼭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곳을 지키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게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입장에서는 단지 먹고 사는 '큰 산업'의 의미 이상의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 상실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상실 및 안보 위험과 연결되어있다. TSMC의 빠른 기술 성장, 미디어텍의 부상, 퀄컴의 노선변화로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은 증폭되었다. 단지 삼성이 잘 알아서 할 문제로 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중요하다. 삼성은 미국에 파운드리 설립을 하려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한국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고 국내 반도체 산업이 그 전략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활을 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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